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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장목단의 상사몽 애우당의 안채

제목 : 상사몽
작가 : 장목단
 





까놓고 말하자면, 상사몽은 예약 전부터 찜찜한 글이었다. 발췌가 정말 안 읽혔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 발췌에 잘 낚이는 인종이라, 발췌만 보고 예약하고 운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대물에, 내가 열광하는 황제광공 유형이 나오는데, 그닥 길지도 않은 발췌가 그렇게 눈에 안 들어오는 걸 보고, 솔직히 예약을 하기까지 꽤 주저했다. 결국 장터에 가서 낚는 수고가 싫어서 지르긴 했지만.

책으로 펼치자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 잘 읽혔다. 양 페이지의 편집체가 일관적이지 않고 작가 스스로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글자 폰트가 커졌다 작아졌다 한 것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뭐 그건 요새 워낙 서비스 좋은 동인지에 익숙해진 탓이라 하는 배부른 소리라 치고.

첫 작품이었던 미보소 때도 느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글쓰기와 자료조사에 성실한 타입이라, 이번에도 글에서 동양풍 시대물의 정취가 한껏 느껴져, 디테일은 참 좋았다. 글 안에서 차용해온 조선 왕조의 관직명과 선비들의 모습도 위화감 없이 어울렸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고아한 대사와 묘사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어휘선택의 고상함에는 몇 번이고 거듭 찬탄을 했다. 동인 바닥에 굴러들어와 적지 않은 동인지를 보았지만, 매조위만큼 말씨와 분위기가 품위있었던 황제는 없었고(혜성같은 신인작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사몽만큼 시대물의 고아한 분위기를 글 자체에서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근사했달까.

그렇기에 내가 이 글에서 받은 가장 압도적인 인상은 우아미였다. 한 마디로 고상하다. 주인공인 매조위도, 액자 식으로 교차되는 선제와 왕후, 그의 호위기사, 그리고 서브공으로 나오는 길여나, 글 안에서 단단히 악역으로 작용하는 의방까지도. 전부 다 너무 품위 있다. 사실, 난 그 점이 이 글이 동인지로서의 매력을 살리는 데 가장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본디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아 그리는 글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가지게 되는 법이긴 했지만, 연산군을 롤모델 삼아 그려냈다고 하기에 매조위는 앞서 말했듯 지나치게 고상했달까. 황제로서의 품위에 치우쳐, 그가 가진 정신적 트라우마와 광기를 살리는데 실패했다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그의 가슴에 진 응어리를 해갈시켜주기에, 정원이는 한 마디로 존재감이 너무 없었다. 하는 일도 별반 없었고. 뭐랄까, 나는 정원이 스스로 방을 떼어 황제인 매조위를 찾아 갔을 때만 해도, 그에게 뭔가 진취적인 구석이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조위를 만나 한 일이라곤, 첫 만남에서 키스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 조위에게 깔리고, 흥분을 돋우는 수준의 얄팍한 저항을 하고, 몇 번의 방사 만에 느끼고, 그리고 오해를 사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그에게 굴복하는 것 뿐인데, 이 모든 것이 침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동인지라는 게 워낙 본능에 치중한 솔직담백한 글인지라 공과 수가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음은 실상 격찬 받아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조위와 정원의 로맨스 코드를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 모든 과정이 과연 글 안에서 필요했나 싶었달까. 모진 말일지도 모르겠으나, 침대 밖에서의 정원의 의의를 난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침대 안에서의 정원이는 대체 이 놈이 바로 그 놈인가 싶게 자꾸만 성격이 흔들려 당황스러웠고. 상사몽에서의 그는 정원이라는 인격체로서 글 안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몰개성한 실험체로서 주어진 자극에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달까. 그래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조위 곁에 설 자가 정원이가 아니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졌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어리석음과 잔인함은 둔자의 미덕인지라, 어떻게든 정원과의 커플링을 엮어주려는 작가의 안배를 글 안에서 발견할 때마다, 나는 설득되기 보다는 비뚤어졌다.  

내 비록 한없이 공편애에 가까워 공을 아프게 하는 수는 무조건 밉고, 밥보다 반찬에 신경쓰는 마니악한 독자라 원래 주연보다 조연에 더 잘 꽂히긴 하지만, 이 글에서의 정원은 정말 아니었다. 그리고 동인지에서 주인수에게 회의를 품어, 이 글의 주인수가 꼭 그 놈이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한다면, 그게 설령 디테일을 얼마나 잘 살렸든 간에 그건 이미 bl 장르 소설로서 실패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이 작가의 1호지에서 분명히 느꼈던 매혹을 상사몽에서 거의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작가의 비껴난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어진 글을 읽고 나불나불 떠드는 게 전부인 독자주제에 시건방진 태도란 건 알지만, 상사몽에선 작가의 조연에 대한 편애가 지나쳤다. 

그야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난히 더 아픈 손가락은 있을 수 있는 법이고, 작가도 사람이니 제 자식이라 하는 캐릭터 중에서 더 정이 가는 놈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단지 텍스트를 읽는다, 는 수동적인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인 내게도 빤히 보였다. 후기에서 (작가의 측근이 지적하고)작가 스스로 시인했듯 이 글의 주인공은 조위의 모친이자 황후였던 수향과 그의 호위무사였던 건원이라는 것이.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이 글 전반을 지배하여 조위와 정원의 존재감을 형편없이 갉아먹었다. 때때로 이게 왜 동인지로 나와야 했을까 회의가 불쑥불쑥 치밀어올랐을 정도로. 

작가는 황후 커플링을 과감히 쳐버렸어야 옳았다. 그리고 조위의 이중성과 상처를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놈과 독자와의 일체감을 충동질하고, 정원이 그를 두려워하고 꺼리고 미워하면서도 끌려가 사랑으로 모든것을 구원하는 스토리의 포석을 깔아야만 했다. 단지 피상적으로 정원이 했던 '잘생겼는데요' 한 마디만을 곱씹으면서, 그랬던 그대가 이제와 왜 내게 상심을 주지? 하며 지나가는 차로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니면 의방과 길여를 좀더 사악한 적대 세력으로 내세우고, 수족이 묶이고 눈과 귀가 덮인 왕의 고뇌를 좀 더 절절하게 묘사해도 좋았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정원의 성격을 지금보다 밝게 하여, 조위의 어두움과 정원의 밝음을 대비시켜 비맞은 버들가지처럼 축 늘어진 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멋진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상사몽 1권은 이미 나와버렸고, 엎질러진 물이야 흘러담을 수 없는 법이니. 글 안 여기저기 떨어진 갈등을 잘 갈무리해 멋진 결말이 나와주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조만간 나올 2권에서는 조위와 정원의 개인적 매력도 조금 더 드러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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