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낙원에서 먼
작가 : chihaya
사실 요즘 난 동인지에 좀 질려 있는 상태였다. 어딜 둘러봐도 텍스트를 매체로 한 것들 중에 이 바닥 글만큼 다채롭게 하드한 장르는 흔치 않은지라,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긴 하지만, 뭐랄까. 동인지 특유의 소비성에 물려 버렸달까. 스트레스 해소용이니까 하고 웹에서 일부러 야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위주의 글만 봤는데도, 외려 노골적으로 목표지향적인 글이라서 그런가. 감정적 카타르시스는 없고, 풀려야 할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분이 들고 마니, 동인지를 예약해도 언제봐도 상관 없는 내 책엔 손도 안 나가더라. 까놓고 말하자면, 이 책도 빌린 것이라 처음엔 반쯤 의무감에 펼쳐든 것이었다.
후회공의 범주에 드는 글이라는 말을 듣고 빌린 글이지만, 내게 보기에 낙원에서 먼은 치유계 소설이었다. 짝사랑에 지쳐 거짓으로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을 만큼 외로운 한 남자와, 사랑 따윈 모른다는 듯 오만하게 서있지만, 결국은 사랑을 퍼주고 싶은 상대를 그리고 있었던 한 남자가 만나 서로를 보듬어 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그린.
만나서 사랑인 줄 모르고 좋아 지내다가 만남처럼 쿨하게 헤어지는 첫번째 이야기도, 헤어졌다가 다시만나 사랑인 줄 모르고(혹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인) 사귀는 두 번째 이야기도, 사내에 아웃팅 되어 일시적으로 가진 것 전부를 잃고 반대급부로 결국 사랑을 되찾는 세번째 이야기도, 전부 다 의외라 할 만큼 좋았다. 실상 십년이 넘는 짝사랑에, 사랑해 라고 줄곧 속삭여주고 선물은 떠안겨 주지만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해 버린 수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면, 보통 삽질을 하기 시작하면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나올 만큼 절절한 소재 아닌가. 그러나 이 글의 현수는 퍽 담담하다. 거짓사랑을 고하는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 것을 자각하면서 헤어질 때마저도 어찌나 의연하던지. 아마도 난 그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언뜻 마냥 약하고 순한듯 굴었던 녀석이 한 번 헤어졌던 태준을 다시 만나 이젠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예감하고 그에 끌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잃지 않고 바로 서있으려는 모습이. 그래서 현실적인 자극성과 악랄함으로 따지자면 최고도 수준에 속할 사내 아웃팅에도 그리 심한 심정적 어택을 받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그 일 때문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아웃팅 이후 태준의 방황이 길다 보니, 꿋꿋하게 버텨주는 현수에게 더 애정이 갔달까.
태준에게 끌려가는 현수의 심리상태는 설득력있게 그려졌고, 물론 1부와 2부 사이의 현수의 캐릭터성이 좀 많이 변한 듯 싶기도 했지만, 조금 변한 듯한 태준의 태도에 헷갈려 하면서도 끝까지 바로 서있으려 하는 현수에게 느껴지는 애잔함은 여전했다. 삽질을 하고 태도는 까칠해지되 몸은 흔쾌히 내줄 줄 아는 관대함도 흡족했고 말이다. 삽질 하느라 함께 잘 타이밍을 놓치는 적지 않은 글들에게 심오한 분노를 품고 있는 내게 이 작가는 진정 동인지의 미학을 아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심정적 어택이 심하여 눈물을 쏟게 만들거나, 막막 달달외전을 부르짖게 만들지는 않았으나, 낙원에서 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완성도를 보여주는 근사한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 : chihaya
사실 요즘 난 동인지에 좀 질려 있는 상태였다. 어딜 둘러봐도 텍스트를 매체로 한 것들 중에 이 바닥 글만큼 다채롭게 하드한 장르는 흔치 않은지라,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긴 하지만, 뭐랄까. 동인지 특유의 소비성에 물려 버렸달까. 스트레스 해소용이니까 하고 웹에서 일부러 야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위주의 글만 봤는데도, 외려 노골적으로 목표지향적인 글이라서 그런가. 감정적 카타르시스는 없고, 풀려야 할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분이 들고 마니, 동인지를 예약해도 언제봐도 상관 없는 내 책엔 손도 안 나가더라. 까놓고 말하자면, 이 책도 빌린 것이라 처음엔 반쯤 의무감에 펼쳐든 것이었다.
후회공의 범주에 드는 글이라는 말을 듣고 빌린 글이지만, 내게 보기에 낙원에서 먼은 치유계 소설이었다. 짝사랑에 지쳐 거짓으로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을 만큼 외로운 한 남자와, 사랑 따윈 모른다는 듯 오만하게 서있지만, 결국은 사랑을 퍼주고 싶은 상대를 그리고 있었던 한 남자가 만나 서로를 보듬어 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그린.
만나서 사랑인 줄 모르고 좋아 지내다가 만남처럼 쿨하게 헤어지는 첫번째 이야기도, 헤어졌다가 다시만나 사랑인 줄 모르고(혹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인) 사귀는 두 번째 이야기도, 사내에 아웃팅 되어 일시적으로 가진 것 전부를 잃고 반대급부로 결국 사랑을 되찾는 세번째 이야기도, 전부 다 의외라 할 만큼 좋았다. 실상 십년이 넘는 짝사랑에, 사랑해 라고 줄곧 속삭여주고 선물은 떠안겨 주지만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해 버린 수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면, 보통 삽질을 하기 시작하면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나올 만큼 절절한 소재 아닌가. 그러나 이 글의 현수는 퍽 담담하다. 거짓사랑을 고하는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 것을 자각하면서 헤어질 때마저도 어찌나 의연하던지. 아마도 난 그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언뜻 마냥 약하고 순한듯 굴었던 녀석이 한 번 헤어졌던 태준을 다시 만나 이젠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예감하고 그에 끌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잃지 않고 바로 서있으려는 모습이. 그래서 현실적인 자극성과 악랄함으로 따지자면 최고도 수준에 속할 사내 아웃팅에도 그리 심한 심정적 어택을 받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그 일 때문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아웃팅 이후 태준의 방황이 길다 보니, 꿋꿋하게 버텨주는 현수에게 더 애정이 갔달까.
태준에게 끌려가는 현수의 심리상태는 설득력있게 그려졌고, 물론 1부와 2부 사이의 현수의 캐릭터성이 좀 많이 변한 듯 싶기도 했지만, 조금 변한 듯한 태준의 태도에 헷갈려 하면서도 끝까지 바로 서있으려 하는 현수에게 느껴지는 애잔함은 여전했다. 삽질을 하고 태도는 까칠해지되 몸은 흔쾌히 내줄 줄 아는 관대함도 흡족했고 말이다. 삽질 하느라 함께 잘 타이밍을 놓치는 적지 않은 글들에게 심오한 분노를 품고 있는 내게 이 작가는 진정 동인지의 미학을 아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심정적 어택이 심하여 눈물을 쏟게 만들거나, 막막 달달외전을 부르짖게 만들지는 않았으나, 낙원에서 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완성도를 보여주는 근사한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덧글